한글학자 최현배 세상 떠남. 경남 울산에서 태어남. 경성 고등 보통 학교(현 경기고)와 주시경이 세운 조선어 강습원에서 배웠고, 1926년 연희전문교수가 되어 철학 논리학 국어학 가르침.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선사람이다. 세계는 넓건마는 조선만이 내 땅이다. 삼천리 강산 위에 곳곳마다 피땀 흔적 이 강산이 역사를 잇고 잇고 다시 이어 이천만이 엉키엉키 살아보세." 1924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 이렇게 썼다. ‘식민지’의 현실에서 외솔 선생님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만들고 1936년 표준어를 정하는데 참여했으며, <큰사전>을 만들다가 1942년에 독립운동 죄로 옥살이(조선어 학회 사건). 45~54년 문교부 편수국장을 2차례 지냈고, 49년부터 20년 간 한글 학회 이사장을 지내고, 57~68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대표이사 등  국어운동의 중심적 인물로 지내며 국어학 연구, 국어정책 수립, 교육학 연구와 한글운동에 전념하여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국어학 분야 연구는 <우리말본>, <한글갈>, <글자의 혁명(1947)>, <한글의 투쟁(1958)>, <한글만 쓰기의 주장(1970)> 등의 저서로 집약된다. <우리말본>은 주시경 이래의 문법연구를 계승, 발전시켜 20세기 전반기 문법연구를 집대성한 것으로 한글 전용, 한글 가로쓰기 운동, 한글 풀어쓰기 실험,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밖에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1927)>, <나라 건지는 교육(1963)>, <조선민족 갱생의 도(道)(1930)>, <나라 사랑의 길(1958)> 등이 있다. 55년 제1회 학술원공로상, 62년 건국공로훈장 단장, 67년 5·16 민족상 본상을 받았으며, 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 되었다.

{한글 학회} 자료: 현대 인물/최 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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