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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그물 한말글 모임
2014년 10월 29일 수요일에 고친 내용입니다.고치기 전 고친 뒤 ● 1947년 7월 24일조선어 학회.‘한글 전용법 제정 건의문’을 내고, 국회 78차 회의에 상정. 재석 131명중 86대 22로 가결. ● 1948년 7월 24일조선어 학회.‘한글 전용법 제정 건의문’을 냈고, 1948년 10월 1일 국회 제78차 회의에 상정. 재석 131명중 86대 22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한글전용법)이 가결 됨.{한글 학회} 자료: 한글학회 100년사 (2014/10/29 - [한말글 현대사/1946년~1950년] - ● 1948년 7월 24일) '한글학회 100년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찾았고, 재확인을 학글학회 책임연구원 성기지 부장님과 페이스북 대화를 통해서 다시 확인하고 고쳤습니다.
조선어 학회.‘한글 전용법 제정 건의문’을 냈고, 1948년 10월 1일 국회 제78차 회의에 상정. 재석 131명중 86대 22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한글전용법)이 가결 됨. 2014/10/29 - [고치고 보탬/2014.10.15.~지금] - [고침] 1948년 7월 24일과 오늘
정부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대통령령 제124호(1946.6.4. 제정)
2014년 10월 29일 수요일에 고친 내용입니다. 고치기 전 고친 뒤 ● 1914년 7월 27일한글 학자 주 시경(1876~1914) 세상 떠남. 황해도 봉산군 무등골에서 태어난 주 시경은 배재학당과 이운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던 중 서 재필을 만나 국어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896년 4월 창간된 독립신문에 국문 전용과 띄어쓰기를 실천했으며 같은 해 5월에 조선문동식회를 조직했는데, 해방 뒤 한글 학회로 발전했다. 또 협성회와 독립협회 등에 참여해 국민계몽과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으며 , , , , , 등의 책을 지어 한글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은 뒤 보성중학교에서 조선어강습소를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지병이 악화돼 38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한..